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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

jane0405 2021. 5. 15. 21:51

  국어시간에 ‘이해의 선물’, ‘되찾은 양심’ 같이 짧지만 울림을 주는 소설을 접하고 난 뒤, ‘고전명작’이라고 하는 책들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완전히 새로운 책들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이 있지만,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감을 준 책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접하지 못한 옛날 시대만의 독특한 정서와 지혜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읽어본 어린이용 세계명작 말고 정말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보니, ‘비밀의 정원’이 딱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이 가장 희미하게 남아있어서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 황무지 구석 신비한 저택의 고색창연함, 정원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확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읽으면서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정말 그 안의 분위기와 공기가 느껴지는 듯한 책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 책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책을 읽을때의 느낌, 계절, 주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골랐다.

   이 이야기는 ‘되살아남’에 대한 것이다. 10년동안 버려져 있던 정원이 되살아나고, 부모에게 사랑 대신 무책임하고 잔인한 자유를 받은 두 아이 메리와 콜린의 어린 영혼이 순수함과 생명을 얻으며 되살아나고, 사랑을 잃고 죽어가던 크레이븐 씨가 되살아나는 과정을 사계절 자연의 무르익는 아름다움에 담아냈다. 겨울, 딱딱한 땅 속에서 조금씩 꿈틀대는 새싹. 메리가 황무지의 바람을 마시며 살아나기 시작한다. 언 땅이 녹고 꽃이 피는 봄, 콜린이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조금씩 나온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피어나는 것처럼 메리와 콜린도 서로의 심술과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낸다. 만물이 찬란한 여름, 콜린이 걷고 뛰며 완전히 건강해진다. 크레이븐 씨는 어지러운 마음에 때때로 찾아오는 고요함을 알아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가을, 크레이븐 씨는 마침내 마음을 감싼 고요함을 믿고 용기내어 집으로 돌아오고 콜린과 함께 더 찬란한 미래를 꿈꾸게 된다.

  소워비 부인은 메리와 콜린을 변화시킨 ‘마법’의 이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부인에게 그 마법은 ‘선한 의지’였고, 메리와 콜린에게는 ‘생명력’이었다. 나는 그 마법이 ‘스스로를 믿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황무지와 정원은 두 아이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자신도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싹을 틔울 수 있다고 믿을 힘. 자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그 힘을 불어넣어 주었고 점차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고 또 자신이 믿는 쪽으로 나아갈 힘을 내어 변화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자신을 굳게 믿을때 매일 새롭고 더 나이지는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콜린이 말했다.

“마법은 자기가 스스로 일으킬 때 제일 효과가 좋아.”

 

아무리 자연의 생명력이 힘을 불어넣어 주어도 그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지 않는다면 아무 효과가 없다. 그 힘에서 용기를 얻어 스스로가 자신을 온전히 믿게 되었을때 무엇이든지 할수가 있다고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얘야, 네가 장미를 키우는 곳에 엉겅퀴는 자랄 수 없단다.

 

생각의 힘이 저 간결한 문장 안에 담기다니, 읽으면서 감탄했다. 밝고 꿈꾸고 믿는 생각들을 가슴속에 채우다보면 괜한 걱정과 불안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크레이븐 씨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 속을 여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두운 생각들로 마음을 짓눌렀고, 자연이 주는 생명력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생각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메리와 콜린을 되살아나게 한 힘조차 크레이븐 씨를 둘러싼 어두움에 도저히 손쓸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가슴 깊이 믿으면, 그 힘이 또 다른 마법을 일으킨다. 콜린이 자신이 살아있고 계속 건강히 살아갈 것이라고 확고히 믿은 순간, 그 힘이 크레이븐 씨의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비집고 들어가 조금의 숨 쉴 구멍을 만든 것이다. 크레이븐 씨는 자신이 얼마나 살아있는지, 주위의 모든 것이 얼마나 살아갈 가치가 있게 해주는지를 알아채는 단 몇 초의 시간을 가지지 못해 10년동안 어두운 생각들 사이에서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같은 몇초의 시간으로 크레이븐 씨의 약한 마음에는 마법이 싹텄다.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을 얼른 털어내고 주위의 자연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힘을 받아들여 용기와 희망의 말들로 가슴을 채우는 것.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바로 와닿게 간결히 담아낸 저 구절이 마음에 쑥 들어왔다.

   고전의 매력은 과거의 가치관과 감성을 엿볼 수 있다는데에 있지만 옛날의 잘못된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불편함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웨더스태프 노인이 콜린에게 핀잔을 받아도 그저 ‘어린 주인님’을 동경어린 눈으로 바라본다거나, 메들록 부인이 소워비 부인에게 “네가 다른 사람이고, 요크셔 말투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더라면 널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을 상황이 몇 번이고 있었을 거야.” 라고 할 때는 신분, 성별, 시골사람이 도시사람보다 교양이 없고 똑똑하지 못하다는 그 시대의 고정관념이 드러나 아쉬웠다. 그리고 책의 결말도 아쉽다. 책의 중간부까지는 메리가 황무지의 거칠고 신선한 자연에서 뛰놀며 변화하는 모습을 그렸다. 디콘과 함께 매일같이 정원을 되살리고 동물 친구들과 교감하는 과정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책을 읽지 않고있을 때에도 그 정원의 몽환적인 분위기과 활기찬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콜린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정원 자체의 변화, 디콘과 메리는 저 뒤로 밀려나고 내용의 흐름이 바뀌었다. 입체적이었던 다른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콜린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 콜린의 등장 이후로 콜린 못지않게 심술궂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메리의 흥미진진한 변화는 묻히고 갑자기 콜린의 변화를 응원하는 헌신적인 모습이 되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디콘이 그만의 매력과 이야기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콜린의 들러리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또 아쉬운 점은 콜린이 걸을 수 있게 되는 계기가 순간적인 분노의 힘이라는 것이다. 내가 작가였다면 콜린의 변화를 그릴때 메리와 디콘과 함께 정원에서 놀고 동물들과 교감하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트고, 디콘처럼 튼튼해지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며 순간의 분노로 인한 힘이 아니라 조금씩 자라나는 의지로 마침내 일어서게 된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콜린의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겸손해지는 모습이 섬세하게 발전되었다면 콜린의 변화를 좀 더 응원했을 것 같다.

 

여름이 오고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로 학교를 오고가는 길에 어느새 핀 장미, 민들레, 초록 나무들을 주의깊게 보게 되었다. 주위의 수많은 식물들이 조용하지만 얼마나 치열하게 피어났는지, 작지만 얼마나 거대한 생명력이 담겨있는지를 읽고 마음으로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디콘처럼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디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연의 작지만 놀라운 비밀들을 알아보는 섬세함과, 그 비밀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굳게 지키는 믿음직함을 가졌다. 사람들은 물론 예민한 동물들까지 디콘을 믿을 수 있음을 아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나도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보는 순수함을 가진 디콘이 가장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순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자신의 일을 하고있다. 서로를 시샘하지도 않고 방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든 생명의 가치와 놀라움을 알고 존중한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정직한 자연에게서 배워 솔직하다. 필요한 것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다. 만물의 하나라는 생각으로 겸손하면서도 들꽃 한 송이도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의 특별함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모든 순간 찬란한 자연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깊은 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가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한다. 이게 자연의 순수이고 선물이고 힘이다. 이걸 깨닫고 한없이 고맙고 감격스럽다가도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했는지 문득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이 지구 어딘가에도 아직 저런 곳이 순수한 그대로 남아있을까? 묘한 분위기를 가진 깊숙한 대저택의 공기, 정원의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느끼고 황홀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주기도 했던 ‘비밀의 정원’이었다. 일주일을 함께 한 이 책을 떠나보내 아쉽지만 또 다른 책에 대한 기대을 가지고 이제 책장을 덮는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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