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창작

북두칠성_1장

jane0405 2020. 10. 19. 19:29

프롤로그.

 

 검은 흑연으로 빈틈없이 칠해놓은 듯한 밤이었다. 북극 하늘 가운데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북두칠성 제6성에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금색 파장이 주위를 감싼 그 무언가는 눈꽃이 떨어져 내리듯 하늘하늘하게, 그러나 우렁찬 폭포수처럼 굳건히 고요 속으로 내렸다.



제1장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검푸른 수면 위로 푸르들이 잔잔히 떠올라 있는 것을 볼 수있다. 어둠 속에서 제각각의 빛을 내어 만물을 비추는 푸르들은 밤의 고요를 소리없는 자장가로 채워주었다. 태초의 어느 순간, 사람들은 위험한 삶의 가운데 밤의 평안을 귓가에 속삭여주는 푸르들을 느꼈다. 지치고 험난한 발걸음의 연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무언가를 바랐고, 그 염원은 푸르에 닿아 성신이 깃들게 되었다. 그 후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소망의 불빛이 푸르에 깃든 성신과 그 푸르에 녹아들어 빛났다.

그중에서도 북쪽하늘의 중심에서 빛나고 있는 북두칠성은 일곱개의 푸르가 줄지어 있는 그 형상이 둥글면서도 곧고, 은은하면서도 강하다 하여 고구려라 하는 민족이 그들의 수호신으로 삼고 그 기상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압록강의 큰 줄기에서 태어나 맑고 단단한 물의 정신으로 스스로 자주를 쟁취하였다. 그리고 점점 강성하여 고구려라 하는 국가를 세워 말을 타고 험준한 산세를 지배하며 그 기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북두칠성 일곱 푸르는 한결같이 그들을 굽어보며 도움을 주었다. 강인한 생명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복과 화가 번갈아 가며 그들의 성장을 부르고, 영웅에겐 부귀를 지나친 욕심에게는 화를 내리고, 항상 중심이 단단히 자리하게 하고, 난세마다 영웅을 내리며 이 민족에게 언제나 힘이 흐르게 하고, 맑은 정취와 기운이 그들을 지나게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돌보는 일곱 푸르에게 언제나 감사하며 ‘북두칠청’이라 불러 그 이름에 하늘과 바다를 담았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금빛 물결이 은은하게 뻗어나갔다. 그 북쪽의 한가운데에는 닻별과 북두칠성 사이 북극성이 자리하고 있고, 북극성은 우주의 흐름이 끊임없이 오고가며 그 흐름이 순탄히 흐르도록 했다.

북극성 요선 성군은 양쪽의 좌무성 바리와 우문성 데기의 보좌를 받으며 온 우주를 굽어보았다. 요선 성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문성 데기가 걱정스레 성군을 부축했다.

  “남두육성이 끝내 빛을 잃었구나”

  “성군..”

  “인간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푸르는 더이상 푸르일 수가 없다.”

  “성군, 좀 쉬시지요.”

  “아니다. 이런 때에 내가 어찌 내 직무를 소홀히 하겠느냐.”

성군은 고운 옷자락을 바닥에 부드럽게 스치며 천추궁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 벗을 잃은 성군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북쪽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북극성은 우주의 흐름을 주관하고, 북두칠성은 고구려를 보살피며 인간의 죽음을 함께 관장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잊혀져 빛을 잃은 남두육성은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였다. 인간들은 항상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서 빛나는 죽음의 칠성신을 두려워하며 그 곁에서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푸르를 찾았다. 그들은 ‘남두육성’이라 하여 생명와 삶을 관장하는 육성신을 생각해냈고, 그 생각은 실체가 되어 밤하늘 북두칠성 옆 여섯 개의 푸르에 성신이 깃들었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함께 섬겼다. 그러나 인간들에겐 두려움이 더 컸던 탓이었을까. 그들에게 죽음이란 말은 항상 머리 언저리를 맴돌았고, 삶이란 말은 점차 잊혀져 갔다. 그들에게 삶이란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두육성의 빛은 희미해져 가다가 결국 남두육성을 기억하던 마지막 이가 죽자 남두육성 또한 사라졌다. 남두육성의 육성신은 각자의 푸르하늘로 떠났다. 우주 너머, 성신들이 자신의 직책을 내려놓고 다음 성신에게 물려준 뒤 가는 곳. 모든 성신의 가문은 각각 푸르하늘이 있고, 성신들이 푸르의 직책을 부여받는 순간 자기 가문의 푸르하늘에 자신의 자리가 생겨난다. 삶을 시작하는 순간, 삶이 끝나고 갈 자리 또한 준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주의 순리는 흘러가는 것이었다.